1922 — 1995 · 목사이자 의사
이일선 목사님이남긴 글을 오늘다시 읽습니다
설교 원고와 노트, 저서를 에이전트가 모두 읽었습니다. 목록을 하나씩 넘겨 보는 대신 물어보십시오. 답에는 언제나 근거가 된 원문이 따라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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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 1995
등에는 십자가, 입에는 노래
전북 익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었고, 의사가 되었고, 서른아홉에 울릉도로 들어가 열여덟 해를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렀습니다.
19221월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이성언과 어머니 강신성의 2남 1녀 중 막내였습니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1938
슈바이처를 마음에 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영중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하던 고학 시절,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 그 삶을 인생의 좌표로 삼기로 합니다.
19454월
조선신학교에 들어가다
해방되던 해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4511월
교회를 세우다
신당정제일교회를 창립했습니다. 오늘의 신일교회입니다.

창립 1주년 기념 · 1946년 11월 18일 19471월
오길화와 결혼하다
주일학교 전도사 겸 오르간 반주자로 동역하던 오길화와 김용기 장로의 주례로 결혼했습니다. 두 달 뒤 『이상촌』을 펴냅니다.
19505월
목사 안수를 받다
조선신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곧 전쟁이 났고, 이듬해 피난 중에 부산 신광교회를 개척합니다.
19513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다
목회를 하면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1955년 3월 졸업하고, 목사이면서 의사가 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1955년 195811월
랑바레네에서 슈바이처와 동역하다
마음에 품은 지 스무 해 만에 그를 만납니다. 아프리카 가봉 랑바레네 병원에서 석 달을 함께 일했고, 슈바이처는 그에게 디모데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 랑바레네, 1959년 19615월
울릉도로 가다
신일교회를 사임하고 결핵과 나병 환자가 많던 섬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열여덟 해를 그곳에서 사역했습니다.

송별 기념 · 1961년 5월 31일 197410월
제2회 인촌문화상을 받다
이듬해 6월에는 제9회 루터교 비헤른 봉사상을 받았습니다. 섬에서는 치료와 예방을 겸한 농촌의학을 폈고, 생활 개선 운동도 함께 벌였습니다.

울릉도의원과 직원들 · 1977년 197912월
섬을 떠나 미국으로
도미 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오마하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를 이어 갔습니다. 1995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진
남아 있는 얼굴들
유족과 교회가 보관해 온 인화지입니다. 색을 입히거나 보정하지 않고, 뒷면에 적혀 있던 그대로 캡션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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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자주 펼친 글
성도들이 자주 펼치고, 공감하고, 곁에 두고 보는 자료를 골라 놓았습니다. 오늘 가장 많이 읽히는 글부터 차례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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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RHEE 에이전트
묻고, 원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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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으면 자료 전체를 읽고 답합니다. 근거가 된 자료를 카드로 함께 내놓고, 자료에 없는 것은 없다고 답합니다. 지어내지 않는 것이 이 에이전트의 유일한 규칙입니다.
다른 문
자료를 다루는
분들을 위한 자리
읽고 묻는 화면은 여기까지입니다. 자료를 올리고, 판독을 고치고, 공개 범위를 정하는 일은 따로 마련한 워크스페이스에서 합니다. 목사님과 연구자,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화면입니다.
나는 내 인생이란 타다가 남은 재 같지 않은가 생각한다.이때 번갯불처럼 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난다.그는 말씀하신다. ‘내가 잿더미 같은 너를 새 기름으로 만들어주마’ 하신다.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이 섬을 위하여, 나아가서 인류를 위하여 작은 그리고 고요한, 그러나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되고자 우리의 약한 심지를 힘껏 치켜올려야 되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한다.이것이 내 인생이요 내 멋이라고 할 수 있겠다.